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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henni 2008-8-24 15:41

인천차이나타운이역사

1883년 인천 제물포 개항 후 한 해가 흐른 뒤 청나라 영사관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차이나타운의 역사가 시작됐다. ‘청관(淸館)거리’로 불린 이곳에 중국 상인 2,300여명이 상륙했다. 중국 비단·한약재·도자기는 물론이고 서양에서 들여온 설탕·유리 등 온갖 물품을 거래하는 무역상이 즐비하고 청요릿집·잡화상·음식점 등도 잇달아 문을 열며 1940년대까지 영화의 세월을 보냈다. 1946년엔 ‘중국과의 친선을 예전처럼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선린(善隣)동’이란 동네 이름도 얻었다. 하지만 6·25 전쟁을 겪고 60년대 이후 화교에 대한 각종 규제책을 맞으면서 급격히 쇠락하게 됐다. 화교들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50평 이상의 점포와 200평 이상의 토지를 소유할 수 없게 한 ‘외국인 토지취득법’이 대표적인 사례. 그 때문에 차이나타운 사람들은 하나둘씩 ‘먹고 살 길을 찾아’ 떠났고, ‘청요리의 본산’으로 명성을 날리던 ‘공화춘’ ‘중화루’ ‘동흥루’ 같은 요릿집들도 70년대말쯤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급기야 90년대 들어서는 보잘 것 없는 달동네로 전락하고 만다. 1905년 개업해 우리나라 최초로 자장면을 선보인 ‘공화춘’은 문 닫은 지 2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폐가로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있고 ‘중화루’는 헐려나간 빈 터만 남았다. 지난 99년쯤 그 많던 전통 중국음식점은 ‘풍미’ ‘대창반점’ ‘자금성’ ‘상원’ 등 단 4곳으로 줄어들었다. 그외 청나라 영사관 자리에 1901년 개교한 이래 차이나타운의 중심부를 지키고 있는 ‘인천화교학교’와 중국빵집 ‘복래춘’이 이곳의 상징이자 산 역사로 남아 있는 정도다


1883年,仁川濟物浦開航后的一年,伴隨清朝領事館的建立,中華街的歷史開始了。叫“清館”的街上,出現了2300名中國商人.不僅有中國綢緞,中藥材,瓷器,還有從西方運來白糖,玻璃等許多物品交易的貿易商櫛比鱗次.清料理,雜貨商,飲食店等陸續開張,直到1940年代如同電影般的歲月.1946年,"與中國的親善照舊保持"的意義下,得到了"善鄰洞"的地名.但是,經過6.25戰爭,60年代以后,對華僑的各種[規制策]的出現,急速的衰弱了.哪怕華僑再有錢,50坪以上的店鋪和200坪以上的土地不能所有的"外國人土地所有法"為代表性事例.因此,中華街的人們為了糊口陸續離開了.以"清料理的本山"名揚四海的"共和春","中華樓","東紅樓"等料理店,也在70年代漸漸的消失了.直到90年代轉變成沒啥可看的山村.1905年開業,做出我國[韓國]最早炸醬面的"共和春"閉店20多年,直到現在當作廢屋一樣的放棄."中華樓"只剩下空地.經過99年,那么多的中國飲食店中,只剩下了"風味","大昌飯店","紫禁城","上苑".此外,在清朝領事館舊址,中華街的中心部,    1901年開校的"仁川華僑學校",和中國點心店"復來春",作為此處的象征,活的歷史遺留下來.
共和春老店[img]http://www.enjoykorea.net/attachments/2008/08/24/44566_200808241510581Yl56.jpg[/img]
復來春新店[img]http://www.enjoykorea.net/attachments/2008/08/24/44566_200808241516001DZDI.jpg[/img]
仁川華僑中山學校[img]http://www.enjoykorea.net/attachments/2008/08/24/44566_2008082415160026wD8.jpg[/img]
仁川市內的中華街 [wmv]http://www.ichinatown.or.kr/movie/01.asf [/wmv]

[[i] 本帖最后由 buhenni 于 2008-8-24 16:07 编辑 [/i]]

琼楼玉宇 2008-8-24 22:57

好长。。。看看图片飘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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