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매쇼핑 vs 소매쇼핑
같은 옷 다른 가격, 동대문 도매쇼핑 vs 소매쇼핑
저렴하고 예쁜 옷으로 유명한 동대문. 동대문에도 가게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남성 셔츠와 바지가 한 상점에서는 6만2000원인 반면, 다른 상점에서는 11만원에 팔았다. 여성 정장 셔츠는 1만9000원과 3만9000원. 차이가 두 배를 넘는다. 옷가게 주인 등을 주 고객으로 하는 도매상가와, 일반 쇼핑객들이 드나드는 소매상가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도매상가와 소매상가 쇼핑이 어떻게 다른 지 직접 가봤다.
::: 도매쇼핑
8월 15일 광복절 자정쯤 동대문에 갔다. 도매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존, APM, 제일평화, 디자이너 클럽 등 도매상권은 동대문운동장 뒤에 있다. 오후 2시쯤 개장하는 소매상가와 달리, 도매상가는 밤 8시쯤 개장해 다음날 오전 6시 닫는다.
APM에 들어갔다. 소매상가와 달리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 의아하기도 했지만, 방해 없이 물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디스플레이된 옷을 만져보는데, 상점 주인이 “옷 들추지 마세요. 저희는 낱장 판매(한 벌 단위로 파는 것) 안합니다”라고 핀잔을 주었다.
도매상가에서는 소매를 하는 곳도 있고, 하지 않는 곳도 있다. 상가를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낱장(또는 소매)으로 파느냐”고 주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한 상점 주인은 “도매가에 조금 더 붙여서 낱장으로 판다”고 했다. “도매에선 물건 들추고 대보고 이러는 거 싫어해요. 옷 입어보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구요.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사이즈 말하고 그냥 사는 거예요. 산 물건은 교환 안되는 거 아시죠?”
주인은 ‘도매에서 쇼핑하기 노하우’ 강의를 계속했다. “여기는 단골 위주로 장사하기 때문에 어디(옷집)서 왔느냐가 굉장히 중요하죠. 어설프게 장사하는 티 내면서 ‘샘플(쇼핑몰 업자들이 소비자 반응을 보려고 낱장으로 구매하는 행위)’ 달라고 할 때는 얄미워서라도 팔지 않을 때가 많아요.”
가격은 티셔츠 한 장에 3000원에서 8000원을 넘지 않았다. 바지도 3만원 아래였다. 수트 상의도 3만원에서 5만원, 셔츠도 1만5000원에서 3만원 사이가 대부분이었다. 소매상가보다 훨씬 싸다. “소매는 도매에서 물건을 떼 가니까 2배 정도 더 비싸게 받게 되는 거죠. 물건 차이는 없어요.”
흰색 프릴 장식을 달 수 있는 분홍색 드레스 셔츠 하나와 바지 한 벌을 구입했다. 합쳐서 6만2000원. 주인이 귀띔해준 소매점을 찾아가 똑같은 옷을 달라고 하니, 11만원이었다. 도매상점이 50% 정도 저렴했다.
가게 주인은 “도매시장의 매력은 소매시장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최신 유행 의류가 빨리 들어온다는 점”이라면서 “일반인들이 쇼핑하기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말만 잘 하면 질 좋고 다양한 옷을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소매쇼핑
밀리오레에 들어갔다. 진열된 옷에 살짝 눈길만 주어도 가게 주인들이 “예쁜 언니, 한 번 입어봐요”라며 말을 걸었다. 목 부분이 좁은 옷이나 티셔츠처럼 화장품이 묻을 수 있는 옷들을 제외하면 모두 입어볼 수 있다. 얼마든지 발품 팔 준비가 된 ‘쇼핑 고수’들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귀차니스트’들에게는 밀리오레, 두산타워, 프레야타운 같은 동대문 소매상가가 좋다.
소매점에서는 말만 잘하면 얼마든지 가격을 깎을 수도 있다. 한 상점 주인은 “제품은 마음에 들어 하지만 정말 돈이 없는 것 같은 손님에게는 그냥 팔게 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얄팍한 지갑은 무기가 된다. 자신있게 텅 빈 지갑을 보여주자. 단, 진짜 돈이 없어야 한다. 꼬깃꼬깃 접어 숨겨놓은 만 원짜리라도 발각되면 민망하다.
동대문 소매상가에서 싸게 쇼핑하는 비법은 따로 있다. 한 상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세련된 손님은 꼭 단골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유행에 민감한 손님들은 훨씬 자주 쇼핑하러 오거든요. 이런 멋쟁이들이 내 가게 옷을 입었을 때 홍보효과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가격을 깎을 땐 거침없이 깎아야 한다. “조금씩 눈치 보면서 가격 깎는 소심한 손님보다, 화끈하게 낮은 가격을 부르는 손님한테 기가 죽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그 가격에 파는 경우가 많죠.”
개점과 폐점시간(오후 2시~다음 날 오전 5시)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도 쇼핑 고수와 일반 손님들의 차이점. 상인들에겐 문 열고 첫 손님을 놓치면 하루 종일 장사가 안된다는 징크스가 있다. 첫 손님은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팔고 본다는 것. 폐점시간 상인들은 마음이 조급해진다.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제품을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예요.” 날씨가 안 좋은 날은 쇼핑하기 좋은 날이다. 쇼핑객 수가 현저히 줄기 때문에, 이익을 조금 남기더라도 팔려고 한다.
동대문 소매상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건? ‘잘난 척’ ‘아는 척’이다. “‘나도 장사 해봐서 아는데, 이거 바가지잖아!’라며 아는 척하거나, ‘여긴 왜 이렇게 비싸요? 저쪽에서 똑같은 옷을 ○만원에 팔던데’라면서 ‘협박’하는 손님은 얄미워요. 깎아주려다가도 안 깎아주게 되요. 차라리 안 팔고 말지!”